목회칼럼

  • 제목 비교되지 않는 신앙인
  • 등록일 2026-10-22
  • 작성자 강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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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아시안 게임이 끝났습니다. 국제적인 스포츠 경기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심판의 판정에 대한 불만입니다. 특히 경기에서 패했을 때 국민적 감정까지 문제가 되면서 스포츠 외에 정상적인 교역이나 외교 문제까지 비화되는 일이 흔합니다. 그런데 심판이 판정을 아무리 잘못해도 탁월한 실력 차이로 이겨 버리면 군소리가 없어집니다. 권투 경기할 때 심판이 아무리 편파 판정을 해도 상대를 링 위에서 때려 눕히고 이겨 버리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실력은 없고 근소한 차이로 이기려 하니까 구설수가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신앙인도 세상 사람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탁월하게 잘해서 시비가 없을 정도가 되어야 전혀 문제가 없는데, 세상 사람과 비슷비슷한 것이 문제입니다. 약간 잘합니다. 조금 나은 것입니다. 이것이 늘 문제 거리입니다. 모든 일에 월등하게 잘하고 탁월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죄를 지어야만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 늘 반성하고 개혁하는데 회개가 필수입니다. 성도에게 회개가 없으면 형식적인 신앙이 되어 버립니다. 쟁기로 땅을 깊이 갈아엎으면 흙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이런 땅은 무엇이나 파종하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갈아 엎지 않고 그냥 두면 잡초가 가득해서 파종할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립니다. 농토는 되도록 자주 갈아 엎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음 밭을 자주 갈아 엎어야 합니다. 그냥 방치하면 형식화 되어 버리고 아무런 감동도 없는 굳은 심령이 됩니다. 매일같이 자신을 돌아보며 개혁하여 바로 세우려는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성곽교회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은 회개 없는 것을 지적하고 갈아 엎지 않는 것에 대한 지적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갈아 엎은 논밭처럼 개혁이 되고 바로 서면 아무도 기독교를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신앙의 본질을 유지해야 합니다.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회가 신앙의 본질에서 이탈하였기 때문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본질을 이탈하면 수단이 나오고 인위적인 모조품이 등장하게 됩니다. 기도해야 할 사람이 기도하지 않고 능력이 떨어지면 목소리에 바이브레이션 넣어서 쉰목소리로 영적 허세를 나타냅니다. 중세 기독교가 교황을 중심으로 해서 세상의 권력을 거머쥔 뒤 결정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면죄부를 팔고 헌금통에 돈이 떨어지는 소리에 지옥에 떨어진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하였습니다. 마틴루터는 신앙의 본질을 강조하였습니다. 오직 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총으로, 인간의 구원은 면죄부가 아니라 성경과 믿음과 하나님의 은총으로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 믿음이 없는 기도, 믿음이 없는 교회, 믿음이 없는 선행. 모두 껍데기일 뿐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이 원칙에 바르게 지켜지고 준수되어야 건강한 교회, 힘있는 성도, 세상과 비교되지 않는 기독교가 되는 것입니다.

 

전적인 삶의 변화입니다.

 

삶은 형편없는데 면죄부만 샀다고 용서받고 천국간다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교회가 형식화 되어 정체되지 않고 늘 새롭게 변화되고 개혁되어야 합니다. 멈추면 부패하고 썩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세상의 죄를 슬퍼하고 세상의 고난에 대하여 연민을 가지고 온 세상이 함께 개혁되고 새로워지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짐을 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마틴루터가 내 걸었던 95개 조항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변화에 대하여 무감각한 것은 교회가 무서운 병이 걸렸다는 뜻입니다. 병에 걸렸는데 자각 증세가 없고 통증도 없는 질병은 거의 고칠 수 없을 때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가 이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시대를 보면서 함께 아파해야 합니다. 이 시대를 책임진 교회와 성도들이 가장 힘있고 능력있는 자세를 확립하고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사회가 교회를 하찮게 대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살아있어야, 신앙인이 살아 있어야 세상이 안전해지고 발전하는 것입니다.